여름영화 세 편 관람안내 [ 디센트 , 다이하드 4.0 , 해리포터와 불사조기사단 ]
Posted 2007/07/09 15:51, Filed under: Magazine/Movie공포영화라도 지향하는 지점이 다르다. 인간 내면의 부조리로 인한 심리적인 공포를 선보이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시각적으로 보여 지는 공포를 표방한 영화도 있다. 디센트는 시각은 물론 심리적인 공포까지 선보인다. 그야말로 두 마리 토끼 사냥에 나선다. 보는 관객의 취향에 따라 공포의 강도와 색이 달라지는 영리한 영화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무더운 여름은 블록버스터의 계절인 동시에 공포영화의 계절이다. 언제부턴가 등줄기 오싹하게 조여 오는 공포로 무더위를 잊으려는 관객들의 패턴이 형성됐다. 물론 극장의 시원한 냉방장치도 한몫했으리라. 어찌됐든 이 공포영화는 비교적 적은 제작비라는 매력적인 제작 여건과 이를 기다리는 관객층이 맞물리면서 여름이면 어김없이 몰려들고 있다. 올 여름 역시 예외가 아니다. <디센트>는 올 여름 공포영화의 추천작으로 이름을 올려놓기에 충분하다.
1년 전 친구들과 함께 했던 가족여행에서 남편과 딸을 잃은 사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친구들이 동굴탐험을 계획한다. 하지만 6명의 미녀들이 줄에 몸을 매달고 내려간 동굴은 그녀들은 물론 관객들을 공포 속으로 안내할 입구였다. 공포영화의 대략적인 조건을 갖추는 순간이다. 폐쇄공간이야 말로 공포를 극대화 시키는 최적의 장소가 아니던가. 어둡고 좁은 동굴, 여기에 암벽등반까지 감행함으로써 스릴과 공포가 만나게 된다. 여기에 여인네들의 비명까지 겹쳐지니 이제 따라 소리 지르기만 하면 된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좋아하는 주노의 안내로 계획에 없던 동굴에 들어선 일행들. 들어왔던 입구가 막히면서 내면의 두려움이 시작되고 서서히 동굴 속에 존재하는 괴물체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공포가 절정에 이른다. 한가롭게 떠났던 여행이 살기위해 사투를 벌여할 끔찍한 공포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디센트는 다른 공포영화와 궤적을 같이하면서 분명한 차이점을 드러낸다. 날카로운 음향효과로 공포를 조성하기보다 드러낼 건 확실하게 드러냄으로써 인간 내면의 본성을 끄집어낸다. 폐쇄된 동굴과 괴물체 등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공포가 조성됐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인간의 내면에 의한 공포가 선명해진다.
괴물이 인간을 뜯어 먹는 잔혹함을 선보이지만 인간의 심리만큼 잔혹한 게 있던가. 아비규환의 동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료를 배신하는 무심함 이야말로 이 영화가 전하는 최고의 공포이자 잔혹함이다. 괴물체들이 박쥐처럼 청각으로 사물을 인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동료가 소리 지르며 괴물체의 표적이 되는 사이 몰래 탈출구를 찾아 나선다. 그럼으로 인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과연 나는 도덕적으로 온전한 인간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괴물체가 등장함으로 인해 그동안 의견 대립을 보였던 동료들이 하나로 뭉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사분오열함으로써 강한자만이 살아남는 원시상태로 돌아간다. 그러다 보니 살아남은 사람은 강인한 여전사로 거듭나는 모습이 공포영화에서 액션 영화로 옮겨가는 듯 해 아쉬움을 남긴다. 두 가지 결말 또한 독특하다. 관객이 생각하고 싶은 쪽으로 선택해 결말을 선정할 수 있지만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두 결말이 꼬리를 물고 순환되는 효과를 발휘한다. 과연 당신은 어떤 결말을 선택할지 궁금하다.

- 영화와 함께 소리 지르고 스트레스 해소하실 분들.
- 불륜을 저주하는 사람들을 위한 깔끔한 마무리.
- 인간의 심리를 파헤치길 좋아한다면 굿.
- 서먹한 연인과 스킨십이 필요하다면야 ㅎㅎㅎ.

- 임산부 노약자나 심장이 약하신 분.
- 의리를 중시하는 분들 보시다 화병이 날 수 있음.
- 불륜 중이면 피하시는 게 상책.
- 골룸 닮은 외모라면 신변의 안전을 위해 삼가라.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이 돌아왔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엔터(enter)키 하나로 통제되는 세상이 됐다. 그래서 시리즈도 4.0 버전이다. 하지만 아날로그 인간 맥클레인은 디지털 테러도 몸으로 막는다. 기계치에 컴맹인 맥클레인은 시대착오적 캐릭터일지 모르지만 그의 노가다 액션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이하드4.0>은 기존 시리즈의 우직한 매력을 고수하며 업그레이드된 쾌감을 선사한다.
<다이하드4.0>은 시리즈의 정체성을 제대로 짚는다. 막 죽을 고비를 넘긴 매튜 패럴(저스틴 롱)이 너무나도 침착한 맥클레인에게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라고 묻는 장면이나, “난 어째서 가끔씩 테러범들과 엮여서 이 고생이야!”라는 맥클레인의 투덜거림은 시리즈의 과거를 상기시키고 모종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작업이다. 동시에 ‘우리는 당신이 이 영화에 기대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자의식으로 들리기도 하고, 혹은 ‘당신은 이 시리즈를 알고 있는가’라는 경계선을 긋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는 동시에 세 편의 전작을 통해 사선을 넘었던 존 맥클레인의 축적된 경험이 <다이하드4.0>에 고스란히 발휘됨으로 증명된다. 긴박한 위기에 맞서는 여유로운 대처 능력은 그의 경험을 공유한 관객에겐 시리즈를 거듭한 진전된 캐릭터를 확인하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물론 사선을 넘는 맥클레인을 지켜볼 어느 관객도 결코 그가 죽지 않을까 조바심을 느끼진 않을 것이다. 이는 ‘다이하드’란 제목 그대로 이 시리즈가 소유한 노골적 상징이며 죽지 않는 시리즈의 쾌감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다이하드4.0>에 기대할만한 최고의 묘미는 리얼 액션이지만 시리즈를 지탱하는 건 존 맥클레인이란 불굴의 캐릭터다. 하늘을 날 수도 없고, 거미줄을 뽑아낼 줄도 모르지만 존 맥클레인은 인간의 한계에 다다르는 극한의 적정선을 극적으로 유지하며 위기를 극복한다. 게다가 그런 긴박함 속에서도 위트를 날려주는 센스를 만끽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그가 자동차를 날려 헬기를 박살내는 장면보다도 그 후, “총알이 떨어져서 그랬다.”는 대사야말로 <다이하드> 시리즈의 천연덕스런 매력에 가깝다. 또한 존 맥클레인이 미국을 지키는 국지적 영웅이라는 영역 표시도 명확하다. 더불어 4번에 걸쳐 미국을 구하는 맥클레인이 딸과의 불화를 걱정하는 아버지이자, 생활고에 푸념하는 소시민이란 사실은 캐릭터에 대한 인간적 유대감을 형성한다. 동시에 50세가 넘은 브루스 윌리스의 나이는 존 맥클레인이란 캐릭터에게 묘한 연민마저 느끼게 한다. 어쩌면 그건 이전 시리즈를 보고 자라온 세대만이 획득할 수 있는 모종의 반가움일지도 모른다.
존 맥클레인을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인간’이라 비유한 극 중 대사는 마치, 특수효과로 광낸 블록버스터들 사이에서 녹슨 발품 액션으로 채운 <다이하드4.0>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다이하드4.0>은 할리우드발 속편답게 블록버스터다운 풍채를 자랑한다. 하지만 최근 비만증에 걸린 듯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화려한 비쥬얼과 거대한 스케일로 오감을 마비시키며 감상의 착시 현상을 유발하는 것에 비해, 러닝타임동안 적정 수위의 화력을 유지하는 <다이하드4.0>은 재미의 실속을 갖춘, 잘 빠진 근육질 오락영화다. 영화의 시작에서 마지막까지 존 맥클레인이 고비를 넘기는 순간순간마다 아드레날린이 분출하는 듯한 쾌감이 정점을 오르내린다. 과격하지만 과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부족하지 않다. 이것이 바로 오락 영화가 지닐 수 있는 탁월한 정점이다. <다이하드4.0>은 딱 그 지점이다.

- 왕년에 <다이하드> 좀 봤다면, <다이하드4.0>은 단연 Must Have!
- CG 왕국에 들어선 액션 첨병, 간만에 만끽하는 할리우드 스턴트 액션의 묘미!
- 지천명(知天命)의 브루스 윌리스, 여전히 액션의 천명을 받들다. 몸사리지 않는 연기에 경의를.
- 특별한 능력보단 투철한 시민 정신이 영웅을 만든다는 것에 동감한다면.

- <다이하드>가 뭐야? 일단 추천 보류. 이런, 벌써 세대차이가..
- 떨어지고, 부딪히고, 얻어터지고. 저러고도 사람이 살 수 있는가에 심각한 이의를 제기한다면.
- 1인 독재 체제의 영웅담은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한다면.

소설과 영화의 괴리감은 <해리포터>시리즈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다. 원작자 조앤 K. 롤링의 골방을 성으로 변신시켜준 마법 같은 베스트셀러 ‘해리포터’는 영화제작자들에게 분명 매력적인 소재였다. 시리즈의 마지막 출간을 앞둔 책을 영화가 그림자처럼 쫓아가는 것도 그 이유다. 하지만 <해리포터>시리즈는 양날의 칼이다. 전세계적으로 1억 9천만 부의 판매고를 자랑하는 베스트셀러 소설의 영상화는 수많은 애독자들의 모호한 상상력를 뚜렷하게 각인시켜주는 이벤트란 점만으로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소설의 잔상만을 쫓는 영화로 몰락할 수 있다는 점은 극복이 쉽지 않은 한계다. 결국 소설의 매력이 영화의 매력으로 거듭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호그와트에 왔는데도 외롭다.”는 해리포터(다니엘 래드클리프)의 고독한 독백만큼이나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이하 <불사조 기사단>)의 분위기는 대체로 어둡다. 돌아온 그분, 볼드모트의 실체를 드러내며 비장함을 더한 <불의 잔>의 엔딩과 직계로 연결되는 후속작인 탓도 있지만, 캐릭터들의 성장통이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성장기의 발랄함은 진로에 대한 현실적 고민에 눌리고, 만만치 않은 운명이 부르는 고난의 인생사를 타고난 해리포터에겐 그런 성장기의 고민을 누릴 여유조차도 마땅치 않다. 무엇보다도 해리포터의 가장 경쾌한 볼거리였던 퀴디치 시합을 흔적조차 볼 수 없다는 점-책과 달리-은 아무래도 이번 영화가 엔터테인먼트 영상물이 되기보단 내러티브를 중시한 영화로 남길 바란 것만 같다.
하지만 출간된 역대 시리즈 중 가장 긴 페이지 수-‘해리포터와 불의 잔’의 4권보다도 1권이 늘어난-를 지닌 <불사조 기사단>을 137분의 러닝 타임으로 풀어내기란 역부족이었을까. <불사조 기사단>은 플롯의 빈틈이 많다. 또한 원작 소설과의 비교상에서 영화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무참할 정도로 무시하고 있으며 흥미로운 이야기의 흐름을 간과한다. 가장 큰 공백은 캐릭터들의 심리묘사다. 단지 심각한 표정만 지으면 무게감은 얹혀질 것이라고 판단한 것일까. 소설에서 늘어뜨린 활자를 통해 세심하게 다뤄지던 성장기 캐릭터들의 갈등과 번민들은 분명 이번 작품의 가장 중요한 핵심 코드였음에도 영화는 마치 철없는 응석을 넘기듯 무심하게 스쳐 지나간다. 결국 <불사조 기사단>은 마치 영화적 감흥이 결여된 소설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는 것만 같다.
원작 소설에 대한 애착만으로 완성도와 무관하게 영화를 선택할 독자들에게도 <불사조 기사단>은 매력적인 콜렉션이 못 된다. 물론 지금까지 영화화된 이 시리즈가 원작의 애독자들을 완벽하게 만족시킨 적은 없었다 할지라도, <불사조 기사단>이 시리즈의 대단원을 위한 초석이란 점을 명시한다면 실망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물론 소설의 페이지 수를 충족시키기엔 러닝타임의 압박이 컸다. 하지만 <불사조 기사단>은 영화적 재구성의 묘미를 살리지 못했다. 소설을 전반적으로 건드리기 보단 단호한 선택을 통한 삭제와 재구성에 충실했어야 했다. 원작을 제대로 살리지도 못했고, 플롯의 공백을 보충하지 못하는 인과관계는 허전하다. 원작의 애독자에게도 비판 대상이요, 비애독자에게도 비판 대상이다. 게다가 역대 시리즈 중 볼거리는 가장 빈약하다. 어쩌면 <해리포터>시리즈의 가장 큰 걱정은 배우들의 빠른 발육보다도 소설에 기댄 채 영화적 고민을 할 줄 모르는 시리즈의 유명무실일지도 모른다.

- 단지 영화의 질적 수준과 무관하게 소설의 영상적 변화 그 자체를 보고 싶다면.
- 소설을 안 본 이에게 좀 더 유리하다.
- 그냥 신기하니까, 그 정도의 관람 포인트라면 다행이다.
- 앞으로 두번의 추가 서비스를 받기 위해 거쳐가야 할 다리.

- 모르는 게 약이다. 차라리 원작보다 영화를 먼저 볼걸 그랬나.
- 귀여운 아이들을 보고 싶다고? 심하게 커버렸다.
- 영상이 주는 쾌감은 역대 시리즈 중 최하다. 심지어 퀴디치 씬 한번 없다!


